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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민, “중간인” 비로소 보여지다

 

 사무소 글 1호 - 문영민, “중간인”  비로소 보여지다 – PDF 다운로드 [한국어]

 

1982년 무렵 나는 서울에서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키가 작고 왜소한 30대 초반의 영어 선생은 일본을 방문중인 한 미국 정치인에 대한 농담을 던졌다. 기자회견을 하던 중 일본인 기자들이 묻기를, “미국에서는 선거를 얼마나 자주 하나요?” 그러자 그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오, 매일 하죠!” 선생의 설명에 의하면, 그 정치인은 기자들이 선거(일렉션 election)가 아니라 발기(이렉션 erection)에 대해서 물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무도 이 농담에 웃음을 터뜨리지 않았고, 교실에는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

 

돌이켜보면 학교라는 맥락에서 이 농담의 저속함과 부적절함은 차치하더라도, 그것은 한국군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을 드러내는 농담이었다. 선생은 한국어와 일본어에는 ‘R’발음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서 알파벳 ‘L’과 ‘R’발음의 차이를 보여주려는 의도였지만, 자신에게 내면화된 군사화 심리가 작동 중인 것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선생은 그 농담을 일본인 기자들이 프로이트적 말실수를 저지른 사례로서 이야기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아마도 어설프다고 여겨지는 일본인들의 영어 발음 실력을 비웃으려 했던 것 같다. 일본은 한국을 거의 40년 동안 지배한 식민주의 세력이었기 때문에, 그 농담에는 분명 반일본 정서가 깔렸다는 점이 확실해 보였다. 또한 미국 정치인이 공개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정력에 대해 이야기할 만큼 편안하고 자신감 있게 묘사된 점 또한 흥미로웠다. 그 농담은 일본 기자들이 미국 정치인의 답변에 당황하거나 그가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알게 되면 마치 거세라도 당한 것처럼 음경선망(penis-envy) 상태로 격하될 거라는 점을 암시했다. 이런 점에서 그 농담은 미국이 일본인을 업신여긴 역사, 특히 히로시마 폭격의 작전명인 ‘리틀 보이’에서 드러나는 그런 역사를 상징하는데,‘리틀 보이’라는 작전명은 일본인 남성의 남성성을 얕잡아보는 미국의 태도를 대표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그 농담에서 결정적이었던 건 바로 그걸 말한 사람이 한국인이었고, 그가 의무복무를 마쳤으며 정력이 넘치는 것으로 여겨지는 미국인들과 자신을 연결 지었다는 점이다.

 

군사정권 치하에서는 공립 남학교에 있는 많은 교사들이 습관적으로 폭력을 사용했다. 그들은 학생들을 체벌할 때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는데, 폭력을 일종의 공적인 의식이자 교육에서 ‘필수적인’ 부분으로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훌륭한 교사는 극소수에 불과했는데, 폭력이나 폭언을 하지 않는 화학 선생 한 분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영어 선생이 또렷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그가 잔혹한 폭력을 쓰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따금 분노를 폭발시켜 학생들에게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온함과 긴장감 사이를 오가곤 했고, 가끔은 갑자기 화를 내며 학생들에게 분필 조각을 집어 던지기도 했다. 때로는 뒤틀린 유머감각을 드러내곤 했으며, 그는 앞서 언급한 농담에서 자기가 군 생활을 하는 동안 받았던 요구를 은연중에 학생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남자다울 것, 힘이 넘칠 것, 정력적일 것, 그리고 그런 에너지를 국가를 위해 사용할 것을 말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 농담은 그가 군복무를 하는 동안 마음속에 품게 된 군에 대한 반항적이고 반체제적인 태도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경우건 간에, 그 농담은 군대라는 조직적 폭력에 매일 노출되는 일을 견딜 만큼 남자답고 강인함을 강요당한 것에 대한 불안과 좌절, 공포가 내면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태가 표출된 것이었다. 되돌아보면 그는 군에서 제대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폭력에 대한 외상, 즉 트라우마를 소화하는 과정에 있었던 것이다.

 

학창시절의 경험에 대해 자세히 쓰는 이유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군대에 대해 논하려 한다거나, 내가 군 생활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군에서 겪는 폭력과 공립학교에서 겪는 폭력을 바꿔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오히려 군사정권하의 한국 사회에 폭력이 만연했다는 것을 확실히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폭력이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학교는 군대의 연장선상에 있거나 군대를 준비하는 기반이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사실 고등학교에서 받은 군사교육은 꽤 이른 시기부터 반복적으로 젊은이들의 정신과 신체에 대한 규율과 감시로서 주입되었다. 당시 계속되고 있었던 냉전논리는 국가와 그 피고용인들로 하여금 청소년들을 동원하고 군사화된 애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한 좋은 환경을 제공했다.

 

영어 선생의 농담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뇌리에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그 농담은 나라 전체가 일본 식민지 세력에 굴복하는 굴욕적인 과정과 그에 뒤따른 미군의 지배, 한국 전쟁, 북한의 공산화 위협이라는 복잡한 역사적 과정에 한국군이 엮여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일본군 장교들은 일제강점기 동안 식민지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인종차별과 더불어 잔혹한 신체적 폭력을 가했다. 일본제국군으로 훈련 받았던 군사 독재자 박정희와 그의 후계자들은 일본인들에게서 가혹한 신체적 처벌을 물려받았다.[1] 식민주의의 잔재에 대한 논쟁들이 여전히 이어지는 상황에서, 한국군에서 상관이 부하를 다루는 방식은 아직도 일본 식민지 시절의 인종차별적이고 억압적인 방식을 따른다는 사실은 역설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그 농담은 일본 제국주의와 미국 제국주의의 악명 높은 잔재들을 융합시켜 잘 보여준다. 대규모의 인구를 전멸시켜 일본의 남성성을 상징적으로 제거해버린 행위는 아직도 한국인들의 심리를 뒤덮고 있는 미국의 지배적인 남성성과 함께 겹쳐진다. 미국에게 남한이 실질적으로 반식민지나 다름없다는 사실은 영어 선생이 자기도 모르게 미국인의 남성성에 대해서 보여준 선망에 의해 입증된다. 이를테면 미국 남성들의 정력은 그들의 강력한 군사력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암시되는 것이다.

 

오형근의 새 작업 <중간인 Middlemen>에서는 군인들의 얼굴에서 불안감을 드러내는 미묘한 흔적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는 식민지 지배와 수십 년 간의 군사 정권으로부터 비롯된 외상의 유산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오형근이 찍은 사진들은 그 어떤 폭력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그의 사진들은 오히려 폭력을 예감하고 그것을 극복하려 애쓰는 군인들의 집단적인 외상을 나타낸다. 오형근의 연작이 지니는 또 다른 중대한 점은, 예상치 못한 종류의 모호한 불안감을 군인들의 모습에서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국가안보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젊은 군인들이 추구하는 세속적 가치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변화를 겪고 있는 오늘의 군사문화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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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근무복을 입은 날씬한 군인 한 명이 광을 낸 구두의 밑창만을 물에 담근 채로 마치 물에 들어가려는 듯이 서 있다. 신록의 우거진 숲이 배경을 채우고, 그 풍경은 물에도 비치고 있다. 이 이미지는 익사를 완곡히 암시하는데, 어쩌면 작가와 촬영 대상인 군인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두운 녹색을 띤 산과 물에 비친 모습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화면의 분할은 마크 로스코(Mark Rothko)나 블링키 팔레르모(Blinky Palermo)의 모더니즘적 추상화에서 드러나는 숭고한 순간을 연상케 한다. 군인의 복부를 감싸고 있는 허리띠의 느슨한 모습은 사진 전체의 완벽하고 풍부한 조형적 구성과 대비되어 어딘지 모르게 나의 주의를 끈다. 창백하고 번들거리는 피부로 둘러싸인 군인의 엄숙한 시선은 그가 신은 구두의 완벽한 광택이 주는 느낌을 되풀이한다. 왠지 나는 그의 구두가 자꾸 신경이 쓰인다.

 

<중간인> 연작은 거대한 규모의 사회적 풍경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남한이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소위 ‘남자다움’이 그 자체에 내재된 모든 복잡한 요소들과 함께 스스로를 카메라의 시선 앞에 드러낸다.오형근은 <중간인>작업을 촬영하면서 지난 작업들에서 보여준 클로즈업 초상에서 벗어나 사진 속에 군사 훈련장이라는 맥락을 포함하고자 군인들과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 이런 면에서 오형근의 새 작업은 <광주이야기>나 <이태원이야기>와 같은 초기작업과도 하나의 순환구조를 이루는데, 이는 이 작업들이 대상을 그들이 존재하는 특정한 장소 안에 위치시킨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오형근은 몇 년 전부터 단체사진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좀 더 정확히는 단순히 수가 많은 복수로서가 아니라,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감정, 즉 집단으로서 존재하는 ‘우리’의 단체사진을 찍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애초에 군인들을 촬영하기 위한 허가를 받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는 아홉 명의 다른 사진가들과 함께 국방부의 한국전쟁 60주년 기념 프로젝트에 초대받았다. 오형근의 설명을 따르면 당시에 그들은 각각 초상사진, 군사시설, 풍경 등 군대의 특정한 측면을 배정받았다고 한다. 국가의 위임을 받아 석 달 동안 군인들을 촬영하는 프로젝트를 마친 뒤, 오형근은 일 년 동안 더 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냈고 결과적으로 이번 연작을 마칠 수 있었다. 작가는 국방부 공무원들이 그의 <아줌마>연작과 <화장소녀>연작 등을 보고 그를 고른 것 같다고 추측한다. 이를테면 그들은 오형근을 그저 단순하게 초상사진가로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들은 오형근의 초상사진이 촬영대상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력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간과했는지도 모른다.

 

오형근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명확한 사회 정치적 비판을 가한 적은 없지만, 자신의 사진이 어떻게 읽히는지의 방식을 감독하는데 있어서는 매우 열중한다. 이것은 <화장소녀>의 경우처럼 촬영대상과 물리적인 맥락을 고르고, 배경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 색상 등을 조정하고, 촬영대상의 얼굴을 크롭 하거나 블로우업 하는 등, 주제와 형식적인 조건을 선택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진다. ‘여권 사진’ 스타일로 촬영한 토마스 루프의 대형 작업이 이미지 확대에서 오는 추상성에 기인하여 반심리적이라면, <화장소녀>연작은 사진의 크기가 엄청나게 큰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십대들이 가진 그들의 외모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사진 1) A private playing with a dog in a cage April 2010

 

오형근은 사실 촬영대상의 미묘한 불안감을 나타내는 데 관심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중간인>연작에 포함된 촬영대상 중 여럿은, 앞서 언급한 물가에 서 있는 군인의 경우처럼, 마치 군에서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말라고 명령이라도 받은 듯이 멍한 눈빛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텅 빈 표정을 한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무감각한 표정을 한 군인의 이미지 가운데 대표적인 또 다른 사진은 우리 안에 있는 개를 쓰다듬으려는 듯 보이는 군인을 찍은 것이다. 그의 냉정하고 미심쩍은 시선은 동물을 보살피는 듯한 몸짓과 강한 대조를 이루며,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다.[2](사진 1)

 

<중간인>연작 중 가장 우울한 이미지는 겨드랑이 아래에 권총을 찬 군인 한 명이 오른쪽 허벅지에 베레모를 얹은 채 왼손은 사타구니에 옆에 두고 적갈색이 감도는 흙벽에 기대앉아 있는 것이다. 그의 뒤편에는 올가미로 보이는 끈이 놓여 있고 올가미의 왼쪽에는 부러진 나뭇가지가 있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마치 아무것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렌즈 너머를 보고 있는 듯하다. 마치 그는 생각이 다른데 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시선에서 드러나는 울적한 무게감은 비극적인 것을 떠올리며, 루이스 페인(Lewis Payne)의 <초상>(1865)을 생각나게 한다. 이 사진은 링컨 내각 관료를 암살하는 데 실패한 젊은 암살자 루이스 페인이 교수형을 기다리는 동안 알렉산더 가드너(Alexander Gardner)가 찍은 것으로, 롤랑 바르트의 카메라 루시다에서도 언급된 잊을 수 없는 이미지이다.[3]

 

이것과 전혀 다른 분위기인 또 다른 사진에서는 위장군복 바지와 검은색 긴소매 티를 입은 젊고 키 큰 병사가 두 줄로 늘어선 텐트 사이에 서 있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씽긋 웃음을 짓는 그에게는 남성적인 몸매와 편안한 태도 안에 자리 잡은 약간의 머쓱함과 수줍음이 엿보이지만, 그는 어느 정도의 자신감을 드러낸다. 군에서 공식적으로 쓰이지 않는 상표인 ‘노스페이스’에서 나온 티셔츠를 입고 있다는 사실은 아마 그가 소속 부대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좌측부터

(사진 2) Flowers and a soldier April 2011

(사진 3) A marine sitting alone April 2011

 

대부분의 병사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오형근의 사진에서는 보통 친밀감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병사들 중 일부는 자신을 드러내고 친밀한 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병사 스스로 무심코 자신의 연약한 상태를 드러내기도 하고, 한 사진에서는 웃통을 벗은 잘생긴 군인이 망울이 터져 나오는 분홍빛 목련꽃나무 앞에 서서 뽐내는 듯 근육을 보여준다. 이 이미지는 한눈에 보기에도 남성적인 동시에 여성적이며, 강한 동시에 연약하다.(사진 2) 또 다른 사진에서는 군인 한 명이 똑같은 꽃나무 앞에 앉아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사진 3) 그가 왜 우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어떤 이유로 슬프기 때문일런지도 모르며, 마치 멜로드라마에 나오는 등장인물 마냥 감성적인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 이미지는 분명 군인이 눈물을 흘리는 사진으로서는 대중들에게 보이는 첫 번째 사진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런 이미지가 군사 기지 밖으로 나와 대중들에게 보여진다는 것 자체가 세상이 변한 신호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사진 4) 하얀 의장복을 입은 두 해병 헌병, 2010년 5월 Two marine MPs wearing white honor guard uniforms, May 2010

 

또 다른 이미지에서는 병원복처럼 하얀 제복을 입은 헌병 두 명이 굳게 닫힌 셔터 앞에 서 있다. 선명하리 만치 붉고, 노란색을 띤 술 달린 장식과 반짝이는 금속 버클이 완벽하게 청결하고 표백된 하얀 제복에 대비되어 눈부시다. 장교 한 명은 다른 장교가 들고 있는 자신의 헬멧에 손을 뻗어 닫는 순간 어색하게 중심을 잃고 있다. 이 이미지는 다소 연극적인 순간을 담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긴박함이 부족하다는 점 때문인지 마치 가면극에 참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사진4)

 

오형근은 분명 한 장의 사진 안에 여러 명의 인물이 있는 집단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관심이 없고, 그보다는 특정한 집단을 구성하는 각각의 개인의 분별된 이미지를 만드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병사 두 명 또는 여러 명으로 구성된 이미지를 촬영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그가 병사들을 개별적으로 촬영한 것은 군대라는 집단적 조직 내부에 있는 병사들의 개별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촬영과정은 오형근과 병사들의 단순한 조우에 불과할 수 있으나, 많은 사진 대부분은 일종의 협업의 결과물이다. 오형근은 병사들의 움직임과 행동에서 세부적인 모습을 오랜 시간 조심스럽게 관찰한 후에야 촬영에 임했다. <중간인>연작은 긴 시간 동안 수 차례 촬영을 통한 결과물이며, 때로는 오형근은 병사가 자연스럽게 취한 행동 중 그가 관심 있게 발견한 특정한 순간들을 다시금 포착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사擬似-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의식적으로 군사 장비와 배경을 미장센으로 사용했다. 촬영 대상은 사진가를 완전히 의식하고 있고, 거의 모든 인물이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그들은 모두들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바라는 작가의 암묵적인 요청에 따르고 있지만, 그 중 여럿은 자신의 ‘실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카메라를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음에도 그들은 종종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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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근본적인 차원에서 군인들이란 동일성과 차이라는 특징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군복에서 드러나는 명확한 동일성과 동시에 체격, 시선, 심리상태와 같은 개별적 특징으로 드러나는 각 개인의 차이를 본다. 개별성을 부정하는 군대 특유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오형근의 사진은 병사들이 군대 안에서 자신이 처한 다양한 상황을 드러낸다. 자신감을 발산하며 군대에 꽤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듯 보이는 병사들이 있는가 하면, 외모에 신경을 쓰는 이들, 연약하고 겁에 질려 있으며 불안해 보이는 이들이나 불신의 눈길을 가진 듯한 이들도 있다. 그리고 본디 억압적인 군대문화에 어딘지 모르게 무관심하고 어쩌면, 심지어 그것을 수용하는 듯한 이들도 있다.

 

최근 한국군에서 배포한 홍보용 포스터에는 이런 문구가 들어 있다. “지상군 페스티벌 2010 ‘강한 군대, 따뜻한 육군’ 국민과 함께!” 이 문구 뒤에는 경례하는 어린이들의 모습과 함께 헬멧과 무기를 써보는 아이들, 군악대 행진, 낙하산 부대 등이 조악하게 합성된 이미지가 들어가 있다. 웹사이트를 보면 이 행사가 여러 가지의 탈것들과 기념사진을 위한 마스코트마저 모두 갖추고 있는 군대식 놀이공원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가족 친화적인 행사로 주말을 끼고 열리는 이 축제행사는 일반 대중을 위한 것으로, 독재 치하 서울 여의도의 ‘5.16 혁명 광장’에서 벌어지던 국군의 날 행진에 투사되었던 엄격하고 명백한 남성적인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군사문화에 엄청난 변화가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강하고, 용맹하고, 정복될 수 없으며, 때로는 군사 훈련 중 위험을 감수하기도 하는 존재로 병사들을 묘사하는 국방부 홍보용 사진과 비교해 보았을 때, <중간인>연작에 등장하는 군인들은 전쟁 중 ‘휴식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 탓인지 처음에는 그다지 강하지 않은 듯 보인다. (사실, 훈련 중인 병사들을 찍은 공식 홍보용 사진 가운데 일부는 사진에 등장하는 병사들이 너무 강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탓에 우스꽝스러워 보일 지경에 있다.) 남한과 북한은 원칙적으로 전쟁 상태지만, <중간인>연작에서는 긴박함이나 북한의 상존하는 위협이 명백히 부재한 듯 보인다. 하지만 <중간인>의 사진들은 병사들 사이에 존재하는 심리적 동요와 억압을 강력하게 전달한다.

 

사실 여러 가지 성격의 복잡한 시선들을 관통하는 공통적인 성격 가운데 한 가지는 바로 사진촬영대상이 된 개인의 내면에 억압된 공포감과 불안정함, 연약함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태연함과 무관심을 드러내는 미묘한 징후들이다. <중간인>연작 전체는 군대에 대한 일종의 제유인데, 사진 속에 있는 각각의 개인이 군대에 있는 다른 수많은 이들로 나타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오형근의 사진은 특정한 개인을 재현하지만,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속성 또한 지닌다는 말이다. <중간인>연작의 사진들은 단지 초상사진임에도 일종의 유형학적 속성을 나타낸다. 이는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의 사진에서처럼 각기 다른 직업을 가진 남성들의 유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가 아니라, 병사들의 통제력 너머에 있는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을 외부 상수로 삼아 이에 대한 그들의 심리적인 반응을 변수로 관찰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따라서 <중간인>연작은 오늘날의 군대에 대한 오형근의 양가적인 시선을 반영한다. 군대는 특정한 목표를 공유하는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와 동시에 그런 목적에 동참하기를 꺼리는 이들로도 구성된 조직이다. 예를 들어, 오형근은 본인의 세대에 속한 장교들과 젊은 사병들 사이에 존재하는 세대 차를 넌지시 암시하는데, 젊은 사병들은 국가를 향한 조건 없는 충성과 국가에 봉사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반드시 공유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오형근에 의하면 중간인의 ‘중간’은 이런 점에서 민간인과 군인의 사이를 뜻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완전히 형성되지 않고 ‘진행 과정 중’에 있는 것으로,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상태에 있는 어떤 것을 의미한다. 사이에 존재하는 것, 즉 청년기와 성인기의 사이, 유연한 상태와 융통성 없는 상태의 가운데, 추상적인 것과 특정한 것의 틈에 존재하는 ‘중간’인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는 모호한 개인적 가치와 공식적인 군대의 임무 사이를 지시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군은 의심할 여지 없이 갈림길에 서 있다. 비록 일본 식민지 지배 중에 창설되었지만, 군대는 이제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와 세계화, 소비주의, 그리고 과학기술로 연결된 사회 속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은 병사들이 외부세계와 밀접하게 연결된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게 한다. 그런데도 한국군의 기본적 전제는 여전히 반공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지나친 육체적 처벌과 언어폭력을 수반한다. 지정학적 질서와 사회 정치적 맥락이 변화를 겪고 있는 가운데, 병사들은 집단성을 구성하는 획일적인 하나의 단위가 되라는 요구와 개인으로서 자아 관념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 사이에 사로잡혀있다.

 

그러한 긴장의 한 가운데서, 병사들은 폭력과 동료들의 자살에 빈번하게 노출된다. 한국에서는 최근 군대에서 일어나는 자살이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 가운데 하나로 대두되었다. 군대 안의 자살 사건 중 다수는 보고되지 않는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살이 발생하면 한국군은 거의 언제나 자살을 저지른 병사들에게 책임을 돌린다고 한다. 군에서 언급하는 자살 동기로 항상 등장하는 문제는 군대 밖에 있는 애인의 변심, 가족 문제, 경제적 문제, 내성적 성격 등이 있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자살은 대부분 부대 안에서 일어나는 차별대우 탓인 경우가 많다. 매체에서 자살을 보도하는 경우에는 신병 괴롭히기, 구타, 폭언 등 자살을 일으키는 원인이 자주 언급된다. 군 관계자들은 군 내부의 폭력이 통제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군인 자살률은 증가하는 추세에 있으며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군에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한국군은 자살을 유발하는 범죄행위를 조사하거나 기소하는 데 있어서 끝없는 실패라는 오명으로 얼룩져 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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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담임선생이 성적표를 나눠주고 며칠이 지난 뒤, 나와 반 친구들은 매맞은 부분의 살 색깔이 얼마나 다양한지, 맞고 나서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색깔이 어떻게 변하는지 따위에 매료되어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보여주고서 비교하곤 했고, 이것은 수업 사이사이 쉬는 시간의 이야깃거리이기도 했다. 교사들의 습관적인 구타는 물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그 고통은 어떤 면에서는 육체적인 영역에만 한정되었다. 구타는 ‘일상화’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반복될수록 어느 정도는 둔감해졌다. 폭력이 닥칠 때면 그저 정해진 순서를 따를 뿐이었다. 이와 견주어 볼 때, 나는 앞서 말한 농담을 삼십여 년 가량 잊어버리고 지내다 갑작스럽게 너무나도 또렷하게 기억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으며, 그 사실은 내 정신에 육체적인 체벌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처럼 보인다. 나의 심리에는 ‘일상화된’ 구타보다 그 농담이 분명 더 크게 각인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간인>연작의 사진들은 나를 불편하게 한다. 사실 이 사진들 중 여럿은 내게 있어 보는 행위 자체가 외상적이다. 오형근은 인터뷰에서 <중간인>에 대한 반응이 보는 사람의 성별에 따라 현저하게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런 반응에 대해 오형근은 한국 남성 대부분이 어떤 형태로든 군 복무로 인한 외상적인 경험이 있고, 자신만의 푼크툼(punctum)과 <중간인>연작을 연관 지어 읽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 그 원인이라고 했다. 바르트에 의하면 푼크툼은 보는 이의 심리를 ‘찌르는 것’으로, 그를 매혹하거나, 괴롭히거나, 상처를 입히는 것이다. 나는 오형근의 사진에 있어 푼크툼은 바로 현재 진행 중인 외상의 경험을 반영하는 촬영 대상의 눈빛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 특정한 상황에서는 바르트의 주장과 달리 나는 푼크툼이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집단적일 수도 있음을 확신한다.

 

하지만 군 복무 경험이 없는 내가 도대체 어떻게 이 이미지들에 대해 너무나도 친숙한 동시에 몹시 거슬리며 불가사의(uncanny)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불가사의’한 감각에는 불안한 기억을 시간이 지연된 뒤에 다시 경험하는 일이 동반되는데, 프로이트의 용어로는 이것을 잠복기라고 부른다. 프로이트는 한 사건으로부터 그것의 억압과 귀환에 관련해 시간의 일직선상의 차원에서 잠복기를 설명하지만, 이것의 중요성은 단지 한 사건을 망각하는 데 있지 않다. 잠복기는 오히려 외상적인 사건이 처음에는 파악되지 않고 기억 속에 숨겨져 있으며, 사건 도중에는 주체가 그 사건을 절대로 완전히 의식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중요한 것이다. 외상을 특징짓는 것은 바로 잠복기로서, 사건을 알지 못하거나 완전히 인식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시적인 지연 이후에 일어나는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는 점에서 <중간인>연작을 받아들이는 일은, 나 자신이 형성기에 일어난 무언가와 <중간인>연작의 이미지를 마주하는 나의 행위 사이에 동등하게 해당하는 뭔가가 있음을 암시한다. 군 복무를 한 적이 없는 상황에서, 내게 군 생활과 그나마 조금이라도 비슷한 경험은 군사정권하에 학교에 다닌 것밖에 없다. 부연설명하자면, 학교를 군대를 위한 준비 단계로 간주하는 것은 학교를 명백한 외상과 잠재적인(insidious) 외상이 모두 일어나는 장소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잠재적인 외상이란 육체에 가해지는 폭력이 아니라 정신과 영혼에 가해지는 폭력의 한 형태로서 보는 것이다.[5]

 

요점을 말하자면, 영어 선생의 농담에는 죽음충동이 흐르고 있다. 미 제국주의의 공식 언어인 영어를 올바르게 발음할 수 있는 능력은 ‘발기’라는 단어를 둘러싸고 전개되며, 이는 남성적 힘과 살인을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치환된다. <중간인>연작의 사진 속 병사들은 살아남으려고 시도하는 가운데 반복적으로 외상을 마주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나는 사진들을 마주하며 여러 병사의 얼굴에서 죽음충동을 대면한다. 어쩌면 병사들 자신이 외상적인 사건에 노출되었을지도 모르며, 그들은 또한 동료 병사의 자살을 직간접적으로 목격한 증인이기도 하다. 병사들에게 있어 외상이란 폭력을 직접 경험하거나 동료가 목숨을 끊는 것을 목격하고, 심지어는 그것에 대해 알게 되는 상황에 노출되는 것에 대해 정신적인 방어막을 치는 것에 다름없다. 그들은 심연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겠지만, 대부분은 군 복무 기간 동안 살아남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외상이 억압이나 방어기제로서만 경험되는 것이 아니라 외상의 실마리가 된 사건의 충격을 넘어서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시적 지연을 통해 경험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외상을 입은 이들이 최초의 외상으로부터 긴 시간이 지나고, 외상이 수 차례 반복된 다음 평온과 안정의 순간, 즉 안전함 가운데서 자살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최초의 비극적 순간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 또한 외상적인 것이다. 말하자면 살아남기 그 자체가 결정적이라는 말이다.[6]

 

<중간인>연작은 영어 선생의 농담에 대한 나의 기억과 무의식에 남겨진 상처를 일깨워 냈다는 점에서 외상적이다. 나는 <중간인>연작을 대면함으로써 캐시 캐루스(Cathy Caruth)가 언급한, “정확히 말하자면, 불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청취와 목격”[7] 이라는 것에 대해서, 즉 잠복기와 귀환을 통해 최초의 순간을 아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외상은 알 수 없는 최초의 순간이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 경험되는 한편, “(외상이 일어난)장소를 끊임없이 떠나는 것”이기도 하다.[8] 이제 결정적인 질문은 외상이라는 재앙으로부터 살아남은 이가 자신의 상처에서 떠나는 것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우리는 어떻게 타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외상에 노출되고 그것이 일어난 곳을 떠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하게 되는 연약한 주체로서 존재하는 수 많은 병사들의 목소리에 어떻게 귀 기울이는가?[9]

 

(사진 5) Two honor guards wearing black formal dress uniforms October 2010

 

어찌 된 일인지, <중간인>연작의 사진 속에 있는 소나무와 깨끗이 다듬어진 관목들은 한국 관공서 건물에 있는 모든 공무원의 책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녹색 인공 펠트천과 그것을 누르고 있는 두꺼운 유리판을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자연마저도 국가의 통제를 상징하고 있는 듯 보일 정도로 다듬어져 있는 것이다. 자연 풍경이 난데없이 등장한 세트장 처럼 보이고, 병사들은 베레모에 눈이 짓눌리고 제복을 걸쳐 입은 채 이상한 대본에 따라 무대에 머무르고 있는 배우들처럼 보인다. 이 숨 막히는 광경에서, 감성적인 것과 삶의 흔적을 드러내는 것은 그 어떤 미약한 징후라 할지라도 나를 꿰뚫고 지나간다. (사진 5)

 

 [1] Seungsook Moon, Militarized Modernity and Gendered Citizenship in South Korea (Duke University Press, 2005), 48. (*한국에서는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 : 국민만들기, 시민되기, 그리고 성의 정치 (서울: 또 하나의 문화, 2007)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음)

[2] 사진작가 산드라 매튜스(Sandra Matthews)가 내게 이 점을 지적해 주었다.

[3] Roland Barthes, Camera Lucida (New York: Farrar, Straus and Giroux, Inc., 1981), 95. (국내에서는 2006년 동문선에서 밝은 방 (사진에 관한 노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적이 있으며, 그보다 이른 1998년 열화당에서도 카메라 루시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다.)

[4] 자살률 증가는 한국 전체가 겪고 있는 큰 문제로, 비단 한국군만의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많은 매체가 군대 내부에 자살에 대한 결정적인 이유가 있지는 않다고 보도한다. 최근 자살한 이들 중 다수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 이후에 자살했는데, 이는 전쟁 경험으로 말미암은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의 심각성을 암시한다. 하지만 2011년 말에 일어난 미군 이병 대니 첸(Danny Chen)의 자살은 인종차별적인 신병 군기 잡기와 따돌림과 관련되어 있었고, 대니 첸의 자살에 책임이 있는 여덟 명의 병사가 미필적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하지만 해당 혐의는 딱히 놀랄 것도 없이 취하되어버렸다.

[5] Cathy Caruth, ed., Trauma: Explorations in Memory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5), 107.

[6] 같은 책 9쪽.

[7] 같은 책 10쪽.

[8] 앞의 각주와 출처 동일.

[9] 앞의 각주와 출처 동일.

 

* 이 글은 아트선재센터 전시와 연관하여 출판된 오형근 모노그래프『중간인(中間人)』(2012, 이안북스)에 수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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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소 글 1호

문영민, “중간인” 비로소 보여지다

한금현, 사진에 대한 무지(無知)

김선정, 오형근과의 인터뷰

작가가 추천하는 전시 관련 도서

전시 정보 – 오형근 개인전 <중간인(中間人)>

설치 전경 – 아트선재센터, 2012. 5. 3 –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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