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한금현, 사진에 대한 무지(無知)

 

 사무소 글 1호 – 한금현, 사진에 대한 무지(無知) – PDF 다운로드 [한국어]

 

 ”사진에서 뭘 그렇게 읽으려 하세요?” 이태원 작업실에서 컴퓨터 모니터 속 군인 사진들을 열심히 보고 있는 나를 보고 오형근 작가는 일침을 놓았다. 사진 이미지를 기호학적으로 접근하려는 비평가의 습성을 꼬집는 한 마디였다. 사실 그랬다. 당시 나는 군인들의 유니폼이 어느 부대 소속인지, 심지어 육군인지, 공군인지도 구별 못하는 군대 문외한이지만 대상으로서의 군인과 그 배경에서 읽혀지는 다양한 기호들의 역학적인 움직임에 촉을 세우며 이미지를 탐색하고 있었다. 해군 세일러 복을 입고 있는 어느 군인은 마치 초등학생 아이가 선생님 앞에서 긴장하며 발표할 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어눌한 발 모양을 하며 덜 떨어진 차례 자세를 하고 있었다. 초년병의 긴장된 얼굴 표정과 경직된 차례자세, 그러나 개인적인 습관은 버릴 수가 없어 드러나고야 마는 몸의 표현 등 사진 이미지 안에서 보이는 개인과 집단을 표상하는 다양한 기호들의 움직임이 오형근의 군인 사진에서 나의 흥미를 끄는 첫 번째 지점이었다.

 

표현적 약호 [1]

 

제복은 사람의 행동을 제어한다. 특히 군복은 군인들로 하여금 어떻게 행동해야 하느냐를 강하게 요구한다. 그러나 오형근의 사진 속의 군인들은 군복을 입을 때의 행동양식에서 조금씩 비껴나고 있다. 비껴나고 있는 지점은 다양하다. 얼굴 표정, 손짓, 몸짓, 자세, 혹은 군인들의 옷차림, 시계나 신발 등 원칙적으로는 군대 내에서 금기될 만한 지점들이 사진에서 드러나 있다. 작가는 이런 것들이 드러나는 것을 심히 우려하였으나 군대와는 달리 사회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이어서 실상은 크게 문제시 되지 않았다. 만약에 이 사진들이 군대 내에서 전시되었다면 난리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오형근의 작업은 군인들의 초상사진이기는 하나, 인물에 주목하기 보다 인물과 배경간의 관계 혹은 인물들간의 관계에 더 주목하는 유동적이고 역학적인 지점을 가지고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지점에는 언제나 틈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오형근의 군인 사진은 국방부의 도움으로 3년에 걸쳐 찍은 작업이다. 3년 동안 전국에 걸쳐 군인사진을 찍었다고 하면 대한민국 군인에 대해서는 준전문가의 지식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촬영한 사진들은 동시대 군인 사진의 기록물로 남게 될 것이다. 오형근의 군인 사진을 보면 군복이 아날로그 패턴에서 디지털 패턴으로 바뀌게 되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육해공군, 해병대, 의장복, 전투복, 체육복 등 대한민국 군인의 모든 군복이 거의 다 망라되어 있다. 이는 일반 대중은 좀처럼 보기 힘든 자료이다. 거기에 사진마다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다. 어떤 군인은 이후 작가의 조수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사진은 객관적인 기록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기억과 결부되어 있다. 또한 사진은 작가의 기억에만 결부된 것이 아니다. 군인 사진을 보는 모든 이들이 군대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을 떠올린다. 대한민국에서 군대는 한 사람의 일생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고 전 국민은 직간접적으로 모두 군대와 관련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건강한 젊은 남자는 모두 군대에 가야하고, 건강이 허락하지 않거나 신체적 조건이 안 되는 사람들도 그 시기에 군대와의 타협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또한 군대에 간 모든 남자들 주위의 여자들은 연인, 친구, 부모, 배우자로서 그 시기를 같이 겪어야 하고 희생의 시간을 공유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군대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군인사진을 보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기억을 결부시키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본다. 나 같이 군대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조차도 입대 전 머리를 빡빡 밀었던 남자친구들에 대한 연민도 생각나고, 아들을 가진 엄마로서 군인 아저씨의 앳된 얼굴을 보면 안타까움도 생긴다.

 

군인 사진뿐 아니라 모든 이미지는 보는 이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읽혀진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듯한 사진 이미지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은 기호학적인 이미지 읽기로 흔히 분석되었다. 롤랑 바르트는 그의 1964년 저서 『이미지의 수사학』에서 광고사진을 기호학으로 분석하였다.[2] 또한 스튜어트 홀은 1972년 『뉴스사진의 결정』이라는 글을 통해 대상의 표정, 제스처 등이 이데올로기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주느냐에 대한 글을 발표 하였다.[3] 1980년 바르트는 그의 마지막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서 이 모든 기호학적 읽기를 넘어서는 사진과의 대면을 “푼크툼”이라는 표현을 써서 이야기 하였다.[4] 그 외에 많은 학자들이 사진을 읽어낼 때 기호학뿐 아니라 정신분석학, 문화이론 등의 다양한 분야를 접합하여 사진을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해석하였다. 사진에서의 재현은 이미지 안에 겹겹이 쌓여있는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그리고 사적인 맥락들을 읽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은 기호학을 포함한 모든 이론적 배경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읽히지 않는 지점이 있다. 일차적으로 사진은 시각적인 만남이고, 사물을 투명하게 반영하는 이미지이다. 한 장의 사진이 의도하는 것은 예술성이나 의사소통이 아니라 사진을 구성하는 자료인 그 대상물로 인식하는 것이다. 즉 읽혀지는 지점과 읽혀지지 않는 지점이 공존하는 상호모순성이 사진 매체의 기본적인 특성이다.

 

사진적 장치

 

사진은 형식적인 면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그리하여 사진은 대상을 담는 형식의 다양함에 한계가 있고 그로 인해 이미지 자체도 유사할 수 밖에 없다. 그리하여 사진에서의 형식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도전 받는다. 그러나 이미지가 유사하다고 해서 대상에 대한 해석을 단순화하거나 일원화하는 태도는 사진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많은 한국 작가들의 작업이 외국의 누구의 것과 비슷하다는 논리는 이미지의 유사성만 보고 단순히 판단하는 오류가 대부분이다. 정작 작가가 사진이라는 매체를 가지고 대상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는지는 간과하고 있다. 더욱이 이미지를 구성하는 사진적인 전략이 대상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인 접근에 어떻게 밀접하게 교차되는지는 인지하지도 못한다. 사진은 일차적으로 시각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이미지 안의 기호를 읽기 이전부터 이미지 자체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사진은 다른 매체의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 있었던 일을 증명하고 실제의 대상을 인위적인 조작이 없는 투명한 이미지인 것처럼 가장하기 때문에 사진과의 일차적인 대면은 중대한 사건이다. 실제로 한 장의 보도사진이 어떻게 찍혔느냐에 따라 진실이 뒤바뀌는 것이 그 예이다.

 

사진의 투명한 이미지 안에 가려있는 다양한 의미의 작용들은 은폐되어 있기 때문에 보는 이가 이미지를 대하는 순간 저항 없이 사실로 받아들인다. 문제는 사진 이미지를 구성하는 사진적 요소들이 이러한 의미의 작용에 은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형근의 사진을 예를 들면, 조명이 그의 사진적인 전략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대상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작가에 의해 미묘하게 계산된 조명의 톤은 이미지의 의미를 구성하는데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오형근의 군인 사진은 크게 두 가지의 톤으로 구분되어 있다. 전시장 2층은 밝은 조명과 느린 셔터 스피드로 촬영하여 환하고 명쾌하게 군인의 얼굴과 몸의 피부 색감을 재생하였다. 더구나 전시장 안에 있는 형광등의 밝은 조명은 대상을 더욱 천박하고 얄팍하게 보이게 한다. 강제된 삶에서 강요된 책임 의식을 안고 있는 군인들을 역설적으로 가볍게 만들어 버리기 위하여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든 사진적 장치이다. 반면 3층의 군인들은 다소 어두운 조명으로 대상을 무겁고 엄숙하게 만들었다. 특히 작은 방 안에 있는 군인 초상사진은 깊고 무거운 톤으로 대상 자체를 어둡게 가두어 버린다. 이러한 조명의 효과는 작가가 대상을 조망하는 방식에 있어서 사진적인 전략을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지점이다. 오형근의 작업에서 조명은 사진의 기술적인 재현뿐 아니라 이미지의 발생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화장소녀(2008)”에서 보여주었던 십대 소녀들의 땀구멍, 얼굴의 솜털까지 살린 섬세한 사진적 표현은 군인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군인 사진에서는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아우르는 조명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사진적 장치는 보는 이가 사진을 최초로 대면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이미지와의 조우에 관여하고, 읽거나 해석되는 부분이 아닌 즉흥적이면서 신선한, 시각적이면서도 심리적인 경험의 충격으로 이어진다. 오형근 사진에서 사진적 장치는 단순하게 대상을 재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작업의 맥락을 읽어나가는데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군대식 표현하자면 훈련된 조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오형근 사진에서의 또 다른 사진적 장치는 대상인 군인과 그 배경이 무대화되는 사진의 화면 구성이다. 이는 오형근의 군인사진이 기록사진으로서의 역할에서 벗어나는 비객관적이고 사적인 지점이기도 하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대상과 배경을 무대화하고 있다. 군인들은 부대 내에서 그들에게 가장 친밀하고 일상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사진에서의 대상은 작가에 의해 일시적으로 정지된다. 초상사진 안의 대상과 배경, 그리고 대상들간의 관계는 작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여기서 나오는 어색함과 부자연스러움은 정지된 시간 안에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사실을 기록하는 듯 하지만 사실을 조작하고 있는 상반된 모순이 사진 안에 존재한다. 자연스러움은 의도적으로 배제되었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인 작가의 주문도 자제되어 있다. 이러한 어정쩡한 상태의 대상과 배경의 관계는 작가가 ‘중간인’으로서의 군인을 표현하는 또 다른 사진적인 장치로 보여진다. 사진 내의 구성은 작가가 연출하는 데로 만들어졌지만 군인 개개인의 표정과 손짓, 발짓, 몸짓까지 작가의 요구대로 구성할 수는 없다. 연출된 무대와 개인의 습성과 개성이 충돌하며 전반적으로 모든 군인 사진은 어그러지고 불일치 되어있다. 아귀가 맞지 않는 서랍장처럼 삐그덕거리고 불안정하다. 사진은 잔상으로 남아 또 다른 불편함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붙잡는다.

 

시선, 욕망

 

오형근의 군인 사진에는 알 수 없는 미스터리 한 지점이 있다. 전체적으로 묘한 분위기는 군인을 바라보는 보는 이의 시선과 욕망에도 기인되어 있다. 앞서도 말했듯이 군인 사진은 보는 이의 경험과 지식에 의해 심리적으로 재구성된다. 이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구성한 부자연스러운 사진적 배경과 대상과의 관계로 인해 더 극대화되었다. 사진을 바라보는 관객에게 작가는 여러 다양한 시선을 열어놓고 있지만 보는 이는 자신의 관점으로만 이미지를 받아들이려 하는 욕망이 있다. 자신의 결핍을 부인하는 욕망은 편협하게 드러난다. 작가의 이전 작업인 <아줌마>, <소녀연기>, <화장소녀>에서도 그러하였는데 오형근의 사진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주체는 언제나 모호하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주체를 흔드는 불확정한 시선을 던져놓고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한 시선을 느끼게 한다. 이전의 시리즈들이 한국 사회 안에서의 여성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조명되었다면 <중간인>에서는 한국에서 남성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들이 교차하고 있다. 군인에게 주어진 강인한 이미지를 위협하는 이러한 시선들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싶어하는 부분이다. 군인들의 집단 초상은 군대 내의 상하관계를 표상하고 있는 동시에 남성 동성으로서의 관계 역시 나타나 있다. 특히 두 군인의 초상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관계를 연출하면서 보는 이의 시선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이는 웃통을 벗고 기마전을 하는 집단 군인 초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남성이 남성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불편함은 옳고 그름을 강제하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반격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가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이러한 시선이 오형근 사진의 쟁점은 아니다. 그보다 작가는 사회적 시선이 왜 다양하게 작용하지 못하는 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작가가 던지는 시선과 욕망의 게임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보는 이의 사회적 배경과 경험의 다양함만큼이나 열려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한국에서 사진 전시가 열리면 상반된 두 개의 무지한 의견이 등장한다. 사진에 대한 무지와 사진을 다루는 사람들의 무지이다. 전자는 사진의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진 이미지를 시각적으로만 읽으려는 이론가들의 무지이고, 후자는 사진의 매체적 특성을 단순하게 기술적으로 평가하며, 사진이라는 형식이 어떤 맥락으로 읽혀지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는 무지이다. 사진은 보는 것인가? 사진에 시각적인 것 이외에 무엇이 있나? 사진에서 시각적인 것은 표면에 불과한 것인가? 사진은 너무나 일상적이라 정작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진이라는 형식이 그리 단순하지 않은 데 말이다.

 

[1] 표현적 약호는 스튜어트 홀의 글 『뉴스사진의 결정』에서 나온 말로, 신체의 자세나 표정, 움직임, 상황, 상호작용, 언어구사, 제스처와 같이 비언어적이 특질들을 말한다. 이를 읽어내는 방식은 그것이 속한 사회의 지식에 연관되며, 사진 이미지의 의미의 구성에 내포적이고 함축적으로 관여한다.

[2] Roland Barthes, “Rhetoric of the Image”, Working Papers in Cultural Studies, no.3 (Birmingham: The 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1972), 37-50.

[3] Stuart Hall, “The Determinations of Newsphotographs”, Working Papers in Cultural Studies, no.3 (Birmingham: The 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 1972), 53-87.

[4] Roland Barthes, Camera Lucida, (New York: Hill and Wang, 1980).

 

ⓒ 2012 사무소 글과 저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사무소 글 1호

문영민, “중간인” 비로소 보여지다

한금현, 사진에 대한 무지(無知)

김선정, 오형근과의 인터뷰

작가가 추천하는 전시 관련 도서

전시 정보 – 오형근 개인전 <중간인(中間人)>

설치 전경 – 아트선재센터, 2012. 5. 3 – 6. 17